김해 은하사에서 가을을 마주하다.
"달마야 놀자"의 촬영장소라서 부쩍 사람들의 발길이 많아진 김해 은하사를
오늘 두번째 방문을 했다. 사실, 멀지 않은 곳에서라도 가을의 서늘한 기운을
느끼고 싶던 차였다. 아직 화려한 단풍은 멀었지만, 고즈넉한 마음을 가지고
돌아올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원한 소풍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코끝에 싸늘한
바람이라도 집어넣고 눈에는 햇살 듬뿍 집어넣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을 잡고
산책하는 것. 오늘은 사소한 내 소망을 잔뜩 충족시키고 돌아왔다.
캐논 익서스 50. 작년 겨울 크리스마스 직전에 산 나의 디카다. 은하사 올라
가는 길에 그 사진기를 실수로 시멘트 바닥에 떨어뜨렸다. 세 번이나 공중제비를
돌면서 사진기는 나뒹굴었다. 눈물이 찔끔 나왔다. 다행히 카메라는 무사했지만
여기저기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나는 살짝 편집증적인 면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카메라 여기저기의 조그만 흠집들이 내내 뵈기 싫어서 새 카메라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져버렸으니까. 병이다.
이녀석 곰돌이 같은 뒷태를 자랑하면서 절을 지키고 있다.
사진 찍는 일이 제법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디카라는 녀석, 오로지 자동으로만
하면 좋은 사진이 나오기는 하나 섬세한 디테일 부분에서 뭔가 빠진 듯하다. 그렇다고,
수동으로 찍자니 수전증 걸린 사람모냥 손이 흔들려서 늘 흔들린 사진이다. 종루를
지키는 나무 용의 색감이 맘에 들어서 5분 정도 뜸을 들여서 찍은 것이다.
고요한 은하사에 은은한 종소리. (불행히도 실제 타종이 아니라 녹음소리였다.)
그러나, 이 순간만큼은 숨을 멈추고 싶었다. 한가한 가을 해질녁의 절 마당.
좋다고 생각했던 내 습성이 어느 순간 지리멸렬하다고 스스로 판단해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사진도 그렇다. 색감이 어떻고의 문제가 아니다. 늘 찍는
패턴에 고정된 것은 아닌가 싶다. 푸른 색감에 고정. 하늘에 고정. 저녁이 오는
그 시간에 고정. 뭐, 좋은 것에만 집중한다고 생각해주시라.
저녁이 스물스물 몰려오는 순간. 은하사에도 불이 켜진다. 우리는 그 절을
빠져서 다시 어딘가로 옮겨갔다. 일몰이 몰려오는 시각. 또 방황하는 시각.
눈물나는 그 시각. 또 하루가 저물어 버렸다.
노을진 하늘 한 켠에 실금만한 별이 보인다. 달인가. 별인가.
별이라면 금성인가, 목성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