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나다

남쪽바다는 따뜻하다.

떠즈 2007. 11. 27. 01:00

 

2007. 11. 24 토요일,

한산도 가는 길

 

 

쓰나미급 감정굴곡을 극복하기 위하여  혹은 가족단합을 목적으로 남쪽바다로 떠났다.

 

한산도는 대학4년 여름방학때 가본 적이 있다. 이번 여행에서 알게 된 사실은 한산도가 제법 큰 섬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과거의 방문때는 밀짚모자에 반바지를 입고서 걸어서 돌아다녔다. 기억속의 한산도는 너무나 더워서 걷다가 죽을 것 같기도 했었다. 십수년이 지난 이번의 방문에는 자동차를 페리에 싣고 가기로 했다. 지방자치제의 덕으로 어딜 가나 드라이브 길은 개발되어있고 어딜가나 인포메이션이 넘쳤다. 악인가 선인가 모를 일이다.

 

 

통영(예전의 충무시)은 남다른 곳이다. 이모부가 굴양식장을 현재도 하고 있고 과거 둘째 외삼촌이 충무세무서에 근무하기도 했던 지라 시내 곳곳이 기억에 남는 곳이다. 요즘 아이들은 통영하면 알아도 충무하면 모른다. 충무김밥이 통영의 자랑스런 산물인 것도 모른다. 통영 번화가의 한 골목을 차를 몰아서 좌회전하면 통영앞바다가 보이고 여객선 터미널이 있던 것이 기억이 나서 무조건 찾아 들어갔다. 그리고 반드시 유명한 충무할매김밥을 먹고야 말겠다 라는 다짐 아래 여객선 표를 구입했고, 승용차도 페리에 실을 수 있다기에 - 하, 놀라운 세상이로다 - 승용차 승선권도 구입했다. 남는 시간에는 충무김밥도 샀다.  페리호 위의 차 안에서 김밥을 게걸스레 우리 셋은 먹을 수 있었는데 옛맛은 나지 않았지만 충분히 맛있었다. 그것이 여행의 즐거움 아니겠는가.

 

 

관광객들에게는 유람선이겠지만 한산도 주민에게는 버스의 역할을 하는 페리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다들 한결같이 배만 쳐다보고 있는 것이 뭉클한 감정을 자아내게 했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기다리는 모습이란 더하지 않아도 감동이다. 다른 방향을 쳐다보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남쪽바다는 따뜻하구나가 정모씨의 대사였다. 과연 너무나 따뜻한 토요일의 날씨탓도 있었겠지만 한산도의 도로는 한산하고 따뜻해서 햇살이 넘쳐 흘렀다. 요즘의 급우울은 일단 내가 모자란 탓이다 라고 원인분석 중이다. 그리고 작은 일 하나에도 예민하고 흔들리는 나의 성격에는 분명 개조가 필요하다. 이야기로 풀어내면 사실 유치할 수도 있는 것이라서 풀어내지는 않겠다. 이야기 하지않고 극복하는 자세도 필요하지 않겠는가가 최근의 내 기조다. 다만 이것저것 같이 몰려오니 쓰나미라고 비유해버렸다. 우스개 소리로 내 사주는 올해부터 너무 좋은 형국이라 걱정할 필요 없겠다고 지인은 말해줬지만 헹 개코같은 소리가 아닌가. 과연 내 인생은 좋은 방향으로 풀릴 것인가. 그러길 빈다, 부디.

 

 

아아, 그러나, 햇살과 따뜻한 바다의 힘은 치유력이 있었다. Soo가 발견한 하트모양 돌이다. 돌을 반출하는 자는 10만원의 벌금에 처합니다라는 간판의 글을 상기시키니 Soo는 얌전히 사진만 찍었다. 사랑하고 사랑하는 나의 딸, Soo. 아이는 한번씩 나에게 물어본다. 엄마 내가 싫은 적이 있어 라고. 나의 불안과 신경질이 아이를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닌가 라는 극단적인 질책도 했다. 아이에겐 아이의 인생이 있을 진대 몰아치지는 않았는가, 나의 인생관을 강요하지는 않았던가, 모자라는 엄마를 사랑해줘서 고맙다. 아이의 이쁜 마음이 느껴질 때마다 도리어 슬퍼지니 이 정도면 병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가로운 햇살과 바다, 하트모양 돌을 앞에 두고 망연자실 멍한 자유를 느꼈다. 사람은 이래서 떠나고 돌아오고 하는 것일까. 남쪽바다는 정말 따뜻해서 그곳에서 오래오래 있고 싶었다.

 

 

손을 잡고 가는 정모씨와  Soo를 찍었다. 뭉클뭉클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햇살만큼 따뜻하길 빈다.

 

 

리어카에 이름과 핸드폰 번호가 적혀있었다. 이곳 어촌의 교통수단인 셈이다. 괜히 또 뭉클뭉클했다.

 

 

해안가에 줄지어 선 집들 사이로 바다가 보였다. 이상스레 골목을 좋아한다. 도시에서 오래 산 나는 집과 집 사이에 났던 좁은 보도판 깔린 골목길과 파란대문에 끌린다. 아이는 저 골목으로 숨어선 "나 찾아봐라" 전화를 했다.

 

 

 

일몰사진을 찍겠다고 내려달라고 했더니 나를 두고 그들은 가버렸다. 지나가는 차도 없어서 아스팔트길에 드러누워도 될 성 싶었다. 슬슬 움직이는 차를 향해 랄랄라 뛰어갔다. 설마 나를 두고가겠느냐는 심정이었겠지. 설마 두고 가지는 않더라. 일몰을 제대로 봤다. 제대로 찍었는지는 모르겠다.

 

 

 

한산도를 떠나는 그때 달이 막 떠올랐다.

페리호 갑판에서 사람들이 웃었다.

둥실 하고 산 너머로 달이 떠버려서였다.

만화처럼 둥실 하고 달이 떴으니 말이다.

 

 

 

여행은 끝났고 밤은 찾아왔다.

잠시 잊었던 예민함은 그대로였지만

자연의 치유력을 믿고 싶어졌다.

 

어찌되었던 나는 다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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