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곁눈질

"청춘", 사랑에 몰입하는.

떠즈 2007. 2. 4. 00:14

 

 

 

영화  "여름이 가기 전에"

 

 

  민환 역(이현우)   /  소연 역(김보경)  /  재현 역(권민)

 

 

작년 PIFF 때 보고 싶었던 영화 중의 하나가 성지혜 감독의 "여름이 가기 전에"라는 영화였다. 부산에서는 서면 CGV에서만 지난 주에 개봉을 했다. 상영관은 아주 조그만 곳으로 10명도 채 되지 않는 관객들이 이 영화를 나와 같이(?) 봤다.

 

이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늦가을, 공간적 배경은 서울이다. 소연은 파리에서 유학 중인 학생으로 잠시 서울에 와 있다. 외교관이면서 이혼남인 민환은 소연이 파리에서 알게 되어 사랑한 전 애인이자 현재도 소연이 사랑하고 있는 남자다. 재현은 잠시 들어온 서울에서 사귄 소연을 사랑하는 남자다.  

 

한번씩 하게 되는 생각이 "사랑하는 두 남녀가 서로 똑같은 크기의 감정으로 똑같이 서로를 사랑한다면"이다. 그러면 참으로 행복할 것이며 사랑에 관한 영화들은 많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사랑의 작대기는 잔인한 형벌일 지도 모른다.

 

소연은 민환을 사랑하여서, 그의 모든 요구에 응한다. "올래?"라는 한마디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오며 그의 집을 방문하는 scene에선 언덕길에서 넘어져도 즐겁다. 그리고 "우리집에서 있으면 좋겠다"라는 민환의 말 한마디에 파리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추고 여관에서 무작정 그의 부름만 기다린다. 소연은 갈 곳이 없어져버린다.

 

그에 반해 민환은 냉정하기 짝이 없다. 부산까지 내려온 그녀에게 말한다. "몇시 차 예약했니?"라는 말로 볼일 다 봤으니 이제 가라는 자신의 마음을 바로 들어내버린다.

 

사실, 정치는 모르지만, 사랑에도 권력이 있음은 안다.

 

사랑에 맹목적인 29살의 그녀, 소연. 자신을 사랑하는 그녀에게 더할 나위 없이 잔인하게 구는 민환. 그리고 "모든 사람은 다 아는데 왜 당신만 모르냐"고 외치는 남자, 재현. 이들은 현실 속에도 분명하게 존재한다. 내가 될 수도 있고 당신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재미있게 봤다.

 

더 많이 사랑하는 자, 당신은 무죄인가 혹은 유죄인가.

 

물론 영화의 소소한 장치들도 좋았으며 매끄러운 진행과 장면 장면 사이의 연결도 흡족했다. 많이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음악적 장치는 더욱 영화를 세련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어쩌면 감독이 여자이니, 여자의 시선에서 만들어진 영화일 지도 모른다.

 

"여름"이라는 단어는 이 영화에서 청춘을 상징한다. 그러나 시간적 배경은 벌써 가을이다. 그리고 소연이 돌아간 파리는 겨울이 되어버렸다.  식상한 이야기겠지만, 여름은 지나가버렸고 가을엔 기약 없는 사랑에 목숨을 걸고 겨울은 벌써 와 버렸다. 그리고 소연은 쓸쓸하지만 겨울의 시간을- 현실을- 혼자서 보낸다. 그래도 사랑하는 게 더 나았을까.

 

그렇다고,

나는, 생각한다.  

 

 

 

 

 

뱀발.

 

부산에 살고 있으니, 부산이 배경인 영화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영화에선 해운대의 조선비치 호텔이 나오고 광안대교, 부산역, 해운대 스펀지 거리 등이 나온다. 같이 간 30살의 그녀는 영화 속에 등장한 화장품 가게를 단박에 알아봤다.

 

"왜 여자들은 나쁜 남자만 좋아할까" 가 포스터 속 문구다. 나쁜 남자 코드를 영화 선전문구로 살짝 도용한 듯 하지만, 나빠서 좋아하는 게 아닐 지도 모른다. 다만,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 상대에게 몰입하는 것이 아닐까. 여자들이 더 그런 경향이 있는 지도 모르지만, 남자라도 그럴 것이다. 재현이란 캐릭터가 그걸 대변한다라고 생각해. (남자가 안되어 봐서 잘은 모르겠다.)  잡아놓은 물고기보단 잡히지 않는 물고기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사랑의 권력이다라고 말하면 말이 되나?